잡동사니

니코마키] 너와 나의 온도는, 너와 나의 거리는.

비좀 2015. 5. 6. 18:41

@R_RYEON님이 쓰신 글(http://www.twitlonger.com/show/n_1slsj1t) 이 너무 좋아서 무임승차 한번 해봤습니다. 마키의 시점에서 쓰인 글을 니코의 시점으로 본 글입니다. 역시 원판이 좋으니까 글이 술술 잘써지네요 대문호 류련님 찬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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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왠진 모르겠지만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든다. 너와 나의 거리는 얼마정도일까. 아니, 너와 나 사이의 온도는 어느 정도일까. 내 가슴은 널 생각하면 끓어오르는데, 너도 그럴까. 확인하고 싶지만 섣불리 확인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확인을 안 하자니 너무 신경 쓰여 견딜 수 없는 이런 미적지근한 관계가 이어진지 몇 개월이나 된 걸까? 너는 지금, 단 둘 뿐인 부실에서,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키 쨩.”

마키는 내가 이름을 부르자 화들짝 놀라며 내 쪽을 쳐다보았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뭐야, 니코 쨩” 하며 불퉁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저기, 있잖아.”

‘나, 어떻게 생각해?’ 아니, 이건 너무 뻔 한 말이고.. ‘영화라도 보러 갈래?’ .. 라고 말하면 정말로 영화만 보고 올 것 같은데, 어떻게.. 마키랑 진솔하게 대화 할 수 있을, 그런 자리 없을까? 라며 머리를 굴리던 도중, 머리가 아닌 가슴 속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오늘,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뭐, 뭐?”

약간 뒤로 물러서는 듯 한 제스처, 그리고 멍청하게 벌린 입. 이건 정말로 당황했구나, 하긴.. 말을 뱉어놓고 나도 순간 엄청 당황했으니까 저런 반응이 당연한 건가. 어이가 없어서 픽, 하고 코웃음이 나왔다. 대뜸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라니, 거절할게 뻔하잖아.

“안될, 까나? 하긴, 마키 쨩은 바쁜 사람이니까.”
“따, 딱히 바쁘지 않은데.. 내일 주말이고, 오늘은 한가하니까..”
“..와주는 거야? 고마워.”

생각 없이 던진 말이 최고의 기회를 가져왔다. 오늘에야 말로 확인 해 보는 거야. 너와 나의 거리를. 너와 나의 온도를.
- 너와 나의 거리는 책상 하나 정도의 거리, 너와 나의 온도는 차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온도.. 약 30‘c

***

“미안해, 저번에도 와봐서 알겠지만 집이 좁아서.”
“따, 딱히 신경 쓰거나 하지 않으니까.”

아침에 싸구려 방향제라도 뿌려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키는 이런 냄새가 나는 집을 어떻게 생각할까, 머리가 아프거나 하진 않을까? 부잣집 아가씨는 방향제도 좋은 것만 골라서 쓸탠데..

“어라? 그러고 보니, 동생들은?”

“아, 음. 집안에 조금, 일이 있어서.”

코코아와 코코로는 수련회 갔어. 그런데 코타로는 열이 심해서 잠깐 병원에 입원을 조금.. 이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으나 걱정 해 봤자 코타로의 상태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 괜히 마키한테 무거운 짐만 던져줄 것 같아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어쨌든, 와줘서 고마워 감사하는 마음으로 특별히 니코니가 음식을 만들어 줄 테니까. 잠깐 저기 소파에라도 앉아 기다리라구.”
“으.응.”

나는 그렇게 말하며 신발을 대충 벗고 부엌으로 향했다. 메뉴는.. 그래, 카레로 할까. 오래 써서 무딘 식칼을 꺼내 감자를 썰고, 당근을 썰고, 양파를 썰고, 코타로를 위해 준비했던 햄과 사과도 꺼내 예쁘게 썰었고, 쌀을 씻어서 밥솥 안에 집어 넣었다. 마키 같은 부잣집 아가씨한테 이런 음식이 입에 맞을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봐야지.

큼직한 냄비를 선반에서 꺼내 기름을 두르고 방금 전에 썰어 넣었던 야채들과 햄을 (사과를 제외하면) 모두 쏟아 넣었다. [치이익- ].. 야채가 익어가는 소리가 식욕을 돋구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는 너무 힘없이 말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에 날 보던 마키의 눈빛은 나를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둘러댄다는 게 오히려 마키의 걱정을 산 것 아닐까. 이럴 땐 ‘별 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라고 말하며 웃어줘야 하는 걸까?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행동하는 쪽이 나를 더더욱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보이게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야채는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었다. 그래, 이정도 볶았으면 됐지, 나는 물을 붓고 카레가루를 뿌리고, 썰어두었던 사과를 냄비 안에 넣었다.

슬슬 배고픔 때문에 속이 쓰려올 때 즈음, 카레가 보글보글 끓었고, 밥솥에서도 다 됐다는 의미의 김이 세어나오고 있었다.

“마키~ 다 됐어!”

내가 부르자 마키는 기다렸다는 듯 쇼파에서 일어나 내가 상 차리는 것을 도와줬다. 하긴, 상 차리는 걸 도와줬다고 해 봤자 접시에다 밥 푸고 하얀 쌀밥 위에 카레를 얹는 게 전부지만.

“어때?”
“..... 맛있어.”

마키의 말엔 진심이 서려있었다. 내가 만든 카레를 진심으로 먹는 마키를 보니 마음이 따듯해졌다.

- 너와 나의 거리는 우리가 앉은 작은 식탁 정도의 거리, 너와 나의 온도는 아직은 미적지근한 30‘c

***

“저기, 밥은 니코가 해 줬으니까. 설거지는 내가 할게.”
“흐응? 부잣집 아가씨가 설거지를 할 수 있겠어? 그릇 다 깨먹는 거 아닙니코?”
“무, 무시하지 마. 설거지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잖아. 니코는 쇼파에 앉아서 Tv나 보고 있으라구.”

도와주려고 했지만 마키의 의지는 너무나도 확고했다. 결국 난 부엌에서 쫓겨나 멍하니 Tv나 보게 되었다.
달그락, 달그락..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나도 안정적이었다. 아무래도 난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다. 어느새 수돗물 흐르는 소리가 멈추고 그 소리 대신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라도 내오려는 걸까.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다니, 기특하네~ 라고 칭찬하려 부엌에 들어간 순간, 마키와 눈이 마주쳤다.

.. 맞아, 난 오늘 이런 시시한 농담이나 하려고 마키를 부른 게 아니잖아. 오늘이야 말로, 마키의 마음은 어떤지 알아보려 온 거라구.

“저기.”
“음? 무슨 일이야?”

말을 하려 했지만 순수하게 빛나는 자수정 같은 눈동자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수많은 말이 목구멍에서 올라왔지만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말이 안 나올땐,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누가 그랬었나. 나는 비틀비틀 걸어가 마키의 품에 안겼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마키는 아무 말 없이 나를 토닥일 뿐이었다. 마키의 손은 너무나도 상냥했지만, 그저 상냥할 뿐이었다.

- 너와 나의 거리는 내가 입은 티셔츠 한 장 만큼의 거리, 너와 나의 온도는 너의 상냥하지만 차가운 손길에 식어 29‘c

***

“마키 쨩, 다 씼었어?”
“응.”

‘집에서 할 일도 없으니, 오늘 하루는 여기에서 보낼게, 그래도 괜찮지? 어차피 니코 혼자니까.’ 라는 말에 나는 방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키의 마음은 어느 정도 확인 했지만, 아직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이리 와 봐.”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대충 닦아내는 마키를 보니, 마키의 머릿결이 걱정돼 마키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마키는 군 말 없이 내 앞에 앉았고, 나는 헤어 드라이기를 켜고 코코로의 머릿결을 만지듯, 상냥하게 마키의 머리를 어루 만졌다.

이렇게 머리 말리는 게 지루해서일까? 마키의 손은 어느새 자신의 머리카락을 베베 꼬고있었다.

“마키 쨩은 손가락으로 머리 꼬는 거 정말 좋아한다니까. 머릿결 상한다구.”

- 너와 나의 거리는 내 손에 들린 헤어 드라이기 정도의 거리, 너와 나의 온도는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채 그대로.

***

“둘 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내일을 위해선 슬슬 자야겠지.”

자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일은 주말 연습이 있는 날이니까. 1분이라도 늦는다면 우미의 불호령이 떨어질테니.. 정말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키 쨩은 침대에서 자, 나는 거실에서 잘게.”

나는 배게를 집어들고 거실로 향했다, 그런데, 나가려는 나를 마키가 붙잡았다.

“쇼파에서 잘 생각이야? 그렇게 자면 제대로 잘 수 없다구.”
“음, 베개가 있으니까. 그래도.”
“안 돼. 거기서 자면 나도 거기서 잘 거야. 아니면.. 니코 쨩은 나랑 같이 자기 싫은거야?”

평소의 마키 답지 않은 발언 때문에 가슴이 또 한번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 알겠어.”

- 너와 나의 거리는 우리가 덮은 이불 한 장 만큼의 거리, 너와 나의 온도는 내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라 34‘c

***
“그럼, 이제 불 끌게.”
“응.”

나는 스위치를 눌렀다. 순식간에 방이 어두워졌다.

“...언제나 고마워, 마키 쨩”

시간이 늦어져서 일까, 아니면 방이 컴컴해져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너를 이렇게 보내기 싫어서일까. 가슴 속에 있는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 말을, 이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나 있지, 마키 쨩이랑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지 행복해.”

이렇게 말을 던지는 나도 낯이 간지러운데, 이런 말을 듣는 마키의 기분은 어떨까.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려 마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건 자수정같이 빛나는 눈 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마키의 기분을 대충 파악 할 수 있었다. 싫지는 않은거구나. 분명.

“그래서 언제나 고마워.”
"…나, 나도. 나도 너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그 뭐야……. 행복해.
"……고마워, 마키 쨩.“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마키를 꼬옥 껴안았다.

"우우웅, 마키 쨩, 좋아해."
"자, 자자자잠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드, 들러붙지 마!“

사실은 ‘좋아해’가 아니라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해’라는 말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좋아해, 친구니까’ 라는 말은 허용이 되지만 ‘사랑해, 친구니까.’ 라는 말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마 지금 내가 여기서 ‘사랑해’라는 말을 하면 서로가 상처받겠지. 사실은 이런 상처를 입을 각오쯤은 해야 되는 건데, 나는 겁쟁이라 그러지 못했어. 미안해, 마키.

역시.. ‘좋아해’. 나, 야자와 니코는, 너, 니시키노 마키를 좋아해.

"……잘 자, 니코 쨩."
"마키 쨩도, 잘 자.“

- 너와 나의 거리는 지금 꼭 맞잡고 있는 조그마한 손바닥 정도의 거리, 너와 나의 온도는.. 남이보기엔 미적지근 하지만 우리에게는 용암과도 같은 온도. 36.5’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