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얏!"
"카, 카요찡?! 무, 무슨일이냥?!"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손을 거두고 손가락을 쳐다 보았다. 차가운 바람을 맞아 빨갛게 불어오른 검지 끝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데려다 손톱에 귤 껍질처럼 보이는 것들이 껴있는 것을 보고 그만 두었다. 

"우으으으..."
"카, 카요찡! 피, 피 나잖아! 이, 이제 그만 돌아가자냐.."
"어떻게 그냥 돌아가! 그 인형은.. 그 인형은.."

소리를 질러놓고 아차, 싶었다. 내 인형을 버린 건 린이 아니라 아빠인데, 린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아니, 오히려 린은 나 떄문에 한 겨울에 불려 나와서 손을 더럽혀 가면서 고생하고 있는데..

"미, 미안해 린, 나.. 나는.."
"미안 할 거 없다냐.. 카요찡이 그 인형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알면서 이런 말을 꺼낸 내가 잘못했다냐, 카요찡.."
"..우으.. 우으으, 미안, 미안해... 린."
"...해가 지고있다냐, 카요찡의 손가락도 걱정되고.. 인형은.. 내일 찾자냐. 카요찡."
"....."

알고 있었다, 이제 곧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언제 샀는지도 모를 낡은 인형에 이렇게 집착하는 내가 너무나 한심하다는 걸, 그리고 그 인형은 버린지 반나절이나 더 되서 이미 수거해 갔을 거란 걸. 내가 잠을 잘 때 마다 꼬옥 안고 자던 그 인형은, 이제 쓰레기 매립지에 처박혀 있을거라는 걸.

"흑..흐윽..."
"카, 카요찡...."

쓰레기 장에 묻혀있던 정체 모를 날붙이 하나가 애써 부정하고 있었던 현실을 깨우쳐주었다. 턱과 다리가 후들거렸고, 눈물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안녕, 안녕, 이젠 안녕.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오늘은 내가 마구 헝클어트렸던 볏과 같던 머리를 빗어 줄 생각이었는데.. 내 말을 들어줄 인형은 이젠 없는데도, 나는 길 한복판에서 그렇게 되뇌였다. 

-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그렇게나 꿈에 그리고 동경하던 '아이돌' 생활을 조그맣게나마 시작 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에 맞춰서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 제일 크나큰 변화는 교우 관계의 변화일까. 친구라고는 린 밖에 없었던 나에게 또다른 친구가 생기고, 나를 따듯하게 지켜 봐 주는 선배님들이 생겼다. 차가워보이지만 사실 속마음은 누구보다도 따듯한 마키. 모두를 포근하게 껴안아주는 호노카 선배님, 가끔은 무섭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뼈가 있는 우미 선배님, 그리고 - 

"하나요!"
"네, 네?!"

볏 머리가 인상적인, 지금 내 앞에 있는 코토리 선배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 아뇨.. 그, 아, 아무것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도 따듯하고, 곁에 가면 마카롱 같은 달콤한 냄새가 나고, 윤기가 흐르는 회갈색 머리가 아름다운, 코토리 선배님.

"..생각 해 보니까, 하나요는 처음 만났을 떄 부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곤 했었지."
"에, 제, 제가요?, 그, 그랬었나요.."
"응! 연습할때도 그랬고, 계속 날 쳐다봤었는데.. 하나요도 역시 -"

코토리 선배님은 그 말을 하며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에, 에?"
"내 머리 위에 달려있는 이 벼슬같은게 신경쓰이는거야?"
"아뇨, 그, 그게,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황급히 손을 빼내며 뒤로 돌았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져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냥.. 날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전부 다 이 머리 모양에 대해서 한마디 씩 하니까 - 하나요도 혹시 궁금해 하지 않을까, 했던 거였어. 당황하게 했다면 미안, 하나요."
"그, 그게.. 코토리 선배님의 머리를 볼 떄마다.."
" - 예전에 자기가 아끼던 인형이 생각나서 날 쳐다봤다. 맞지?"
"에?"

인형에 대해선 아무한테도 이야기 한 적 없었는데?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돌렸다. 어디에서 나온걸까 - 볏 머리가 인상적인, 귀여운 새 인형이 코토리 선배님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게, 사실 처음에 나를 계속 쳐다보니까, 내가 마음에 안드는 걸 까 하고, 린이랑 잠깐 상담해봤거든... 그랬더니 린이 그런 얘길 해주더라. '아직까지 우울해 하고 있다.'라는 말을 듣고 힘을 내서 만들어봤어."
"...코토리.. 선배님..."
"린의 설명을 듣고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봤지만.. 린은 그 인형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 아하하, 어때? 하나요. 그 인형이랑 비슷해?"
"..네.. 네에."

코토리 선배님의 손에 들린 인형을 잡아 꼬옥 안아보았다. 푹신푹신 했다. 예전에 내가 안았던 그 인형만큼이나, 아니, 그 인형 이상으로, 푹신푹신하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비슷하다니 다행이네 -. 그 인형을 대신 할 순 없겠지만, 내가 만들어준 인형이랑 새로운 추억들을 쌓아갔으면 좋겠어. 앞으로 사이 좋게 지낼 우리들처럼."
"....."

그 말을 하며 나를 향해 눈웃음 짓는 코토리 선배님의 얼굴은, 너무나도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며 얼굴이 달아 올라서, 나는 인형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제야 조금 알것같아, 내가 코토리 선배님을 계속해서 봐 왔던건, 내가 가지고 있던 인형이랑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게 아니었다는걸, 이건 바로 - 

"고마워요, 코토리 선배님. 그리고.. 좋아해요."
"응! 나도 좋아해! 하나요."

좋아한다는 감정, 일거야.

Posted by 비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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