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게 유명한 스레..인가 SS인가를 패러디한 글입니다. 그런데 원본이 무슨 내용이었더라.. "~~한테 ~~를 들켜버리고 말았다"는 제목이었던건 확실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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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사와 다이아는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굳게 닫힌 자신의 방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방 청소는 내게 맡겨! 이정도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 라며 자신만만하게 말한 루비가 아직까지도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소는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하는게 중요해요" 라고 루비에게 말을 해 놓긴 했지만 - 

'벌써 40분째야. 부엌 청소까지 다 끝내놨는데 아직까지 내 방에서 뭘 하고 있는거람?'

이런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정말로 아직까지 청소중인걸까? 아니면 안에서 딴짓을 하는건가? 혹시 안에 들어가서 자는거 아니야? 같은 생각이 다이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언짢은 표정으로 문과 눈싸움을 하다 '아, 그래,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되잖아.' 라는 생각이 든 다이아는 문을 단숨에 열어젖혔다. 루비가 딴청을 피우고 있으면 놀래켜줄 요량이었다.

"하와와와왓?!"
"루비! 뭘 하고 있는건ㄱ..."

문을 열어젖히자 맨 처음 보인 건 루비의 휘둥그래진 눈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보인 건 - 자신이 꼭꼭 숨겨둔 만화책, 그리고 그 만화책을 꽉 쥐고 있는 루비의 조그마한 손이었다.

"그, 그 책은 어떻게..?!"
"어, 언니가 무서워..!!"

루비가 그 책을 들고있다는 걸 안 순간, 흐트러짐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던 다이아가 온 몸으로 '흐트러짐'을 표현하고 있었다. 휘둥그래진 눈, 온 몸과 함께 흔들리는 동공, 미세하지만 확실하게 다닥,다닥 떨리고 있는 입. 다이아가 평소에 말하는 '쿠로사와 가(家)에 걸맞은 품위있는 행동' 하고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그도 그럴것이 - 지금 루비가 들고 있는 만화책은 말하자면 루비를 향한 새까만 감정들의 현현(顯現), 미성년자의 신분이라면 봐서도 안되고 볼 수도 없는, 그런 내용이 가득한 책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어, 언니한테.. 언니한테 범해질거야..!!!"
"아, 아니야, 자, 잠깐만. 오해입니다! 오해라구요!"
"저, 정말이야? 그, 그럼 이 책들.. 다이아 언니꺼가 아닌거야?"
"아니, 그, 그건 아니지만."
"하와와와왓...!!! 언니한테 범해질거야!!!"

루비는 쿠로사와 저택에 전부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며 앉은 자세에선 있을수 없는 속도로, 손까지 써가며 뒷걸음질 쳤다. 그 뒷걸음질을 멈춘건 고풍스러운 옷장이었다. 옷장에 부딫히는 둔탁한 소리가 다이아의 방을 가득 채울정도로 났는데도 불구하고 루비는 "언니가 무서워! 누가 좀 살려줘요!" 라는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다행이지.' 

다이아는 지금 섣불리 다가가는 건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세 발자국,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루비, 이, 일단 진정을..."
"......"

차분하게 말한 게 효과가 있던 것일까, 방금 전 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루비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그래, 하긴.. 고등학생 이니까, 그렇지. 한창 관심 가질 나이라고 생각 해."
"그, 그렇지요?"

휴, 다행이야. 이제야 좀 진정 했구나.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다행이지 부모님이 계셧으면 큰 일이 났겠어. 다이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천천히, 한 발자국씩 루비에게 다가갔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그래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루비."

뒤로 물러 섰던 만큼 다시 천천히 다가간 다음, 다시 한 발자국 내딛으려 하는 순간. 다이아는 대지진이 일어난 루비의 동공을 마주 보았다. 지금 다가가면 다시 소리를 지를 게 분명해. 다이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나섰던 왼발을 거두었다.

"그,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벌벌 떠는건가요? 무서워 할 필요 없잖아요..?"
"그,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걸..! 범할꺼잖아! 이 만화책.. 근친백합물이었어, 초 매니악한 방법으로 범해질거야!"
"루, 루비! 조, 조용히 하세요! 그, 그만..!"

'근친백합'이라니 그런 안좋은 말은 또 어디서 주워 들은거야? 다이아는 잠시 뜨악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저 침대 위에 나를 묶어놓고선 '그동안 가르쳐주지 못한 거.. 오늘 알려줄게♡' 따위의 대사를 하며 날 범할거잖아?!"

저 대사는 분명 저 책에서 나오는 대사였지, 정말, 쓸데없는 곳에서만 응용력이 뛰어난 아이라니까.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그런 대사 인용하지 마세요! 누가 들으면 오해한다구요!"
"완전 매니악한 대사.. '지금, 루비의 안에 들어 갈거야.' 같은 말을 들으면서..!"

그 대사를 듣자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것이 느껴져 다이아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나, 정말 파렴치한 책을 읽고있었구나.. 반성해야겠어.

"그, 그렇지 않다니까요! 그, 그리고 그 대사는 별로 매니악한 대사도 아니고..!"
".....뭐?"
"아."

말실수를 한 다이아의 머릿 속에서 '말은 항상 조심히 하셔야 해요. 말이라는건 화살이랑 똑같아. 주워담을 수도 없고, 한번 꽃히면 그 상흔이 계속해서 남으니까요.' 라는 말이 울려 퍼졌다. 저 말은 루비에게 조언이랍시고 자신이 해준 말이었다.

"아뇨, 그, 방금전 말은 그.. 실수로.."
"그..그정도는 기본인거야? 방금 전 대사도 엄청나게 심했는데..? 그 정도로는 만족 할 수 없는거야..?"
"아, 그, 그러니까 정말.. 실수라니까요.."
"다이아 언니가 점점 먼 곳으로 가고있어.. 아니, 내 안의 다이아 언니는 원래 머나먼 존재이긴 하지만.. 다른 의미로 멀어지고 있어..!"

안그래도 벌벌 떨고있었는데.. 이런 결정적인 말 실수까지 하다니.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걸까,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 사랑스러운 루비는 이제 나를 거부하고 멸시하고 무시하는걸까, 그런 삶이라면 차라리 죽는게 나을지도 몰라. 아아, 이럴 줄 알았다면 이미지를 쌓는답시고 루비한테 엄격하게 대하지 말고 진즉에 루비를 꽉 안아보기라도 할걸! 후회가 물 밀듯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래.. 어쩌면 내가 잘못했던걸까.."
"네?"
"그동안 언니한테 너무 어리광만 부리고, 계속 아이인 채로만 있었던 게 문제였던 걸지도.. 몰라."

루비는 벌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다이아를 올려다보았다. 다이아는 그 눈빛을 보며 대화 화제가 바뀐 것에 대한 안도를 느끼고, 그와 동시에 저런 파렴치한 책을 읽는 언니를 아직까지 믿어주는 루비에 대한 기특함, 그리고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죄악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래서.. 그런 루비를 어른으로 만들려고..그렇게.. 강압적으로... 그래, 그런 거라면.. 납득 할 수 있기도..한데.."
"아, 아니 갑자기 왜 협조적으로 변하는 건가요, 그런 건 납득하면 안 되요! 루비."
"그래도.. 거부하면 더 심한 꼴을 당하잖아..?"
"대, 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디까지 읽은 거에요?! 그런 거 안할 거라니까요!"

루비는 다이아의 말을 듣고 조그맣게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가로 젓더니, 바닥에 손을 짚고 천천히 일어 선 다음 다이아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다 다섯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남기고 멈춰 섰다.. 벌벌 떨리던 루비의 눈은 어느샌가 굳건한 결의로 가득 차있었다. 그 기백과 결의에 밀려, 다이아는 자기도 모르게 또 한 발자국 뒤로 물러 섰다.

"그러면.. 내 눈을 보고, 똑바로 말해 줘!"
"..뭘?"
"[나는 여동생을 범하고 싶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습니다.] 라고..!"
"..그런 선언까지 해야 하는 건가요..?!"
"그런 말 안해주면 안심이 안되는 걸! 마루쨩이 위험할 지도 모르니까..!"

난 딱히 연하 취향이 아니라 루비, 너를 좋아했는데 마침 네가 내 동생이었을 뿐인데..

"으음..."
"..역시 거짓말로 선언 하는 건 싫은거야?!"
"아니, 그런건 아니에요! 말 하면 되잖아요, 말 하면... 그러니까.. '나는 나의 여동생을..'"

그래, 이런 대화는 단숨에 끝내버리자. 다이아는 쏟아 붙듯 루비의 선언을 따라 하려 했다가 잠시 멈칫했다.

"저기, 잠깐만."
"..응?"
"그러니까.. '범한다'의 범위는 정확히 어디까지인거죠?"
"...에?"
"서로의 기준점이 다를 수도 있잖아요. 저는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루비한테는 범한다고 생각된다던가.."
"...그.. 그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그것..도 그렇네."
"그럼.. 루비의 기준은 어디까지죠?"
"으음.. '키스'?"
"엑."
"엣?"

동시에 터져나온 외마디 탄성, 그 탄성끼리 맞물린건지 루비와 다이아는 서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아, 아니. 친구 끼리라도 보통 친한 사이라면 할수도 있지 않나요?"
"보통은 그런거 안해! 언니 무서워!!!"
"아니, 저, 정말인가요? 저.. 한번은 마리랑 해본 적도 있었고.."
"보통은 그런거 안 한 다니까... 그, 그런데.. 나랑은 한 적 없으면서 마리 선배님이랑은 해봤다고....?"
"루, 루비는 훨씬 더 소중하고.. 두근거리는, 나한테 있어선 그런 사람이니까.. 여, 여하튼. 저 키스라는건 볼이라던가, 입술까지에요. 그런 책에 나오는 '아랫입에 키스' 같은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아 줬으면 해요."
"알겠어... 저기, 그런데 그러면.. 언니는 어느 정도의 범주 까지라면 그 선언, 할 수 있어? 내 기준이 불만이라면 언니가 정해도 되니까, 내가 맞춰 나갈 수도 있는 거니까.."
"으, 으음.."

다이아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루비한테 하고 싶은 것은 어디 까지일까, 방금 전엔 홧김에 말해 버릴 뻔 했지만, 루비의 그 선언을 쉽게 따라해도 되는 걸까. '약속이라는 건 함부로 깨는 게 아니에요, 신뢰의 무게란 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무겁답니다.' 라는 말도 루비한테 하지 않았던가.

"..못 정하겠네요."
"..뭐?"
"어떤식으로 정하라고 해도.. 그.. 뭐라고 해야하나, 욕심이 난달까, 포기 할 수 없는것들이 많아서."
"여. 역시 범하고 싶은거였어어어어어어!!!"

루비의 눈동자에서 불타고 있었던 결의는 사라지고, 루비는 자신의 동공이 떨리는 속도만큼이나 재빠르게 뒷걸음질 치다 옷장에 꼬리뼈를 갖다 박고 말았다.

"그.. 그래도, 역시, 오랫동안 품어왔던 감정에 거짓말을 할 순 없는 노릇이고.."
"그, 그런 감정을 품어왔다는건 전혀 듣고싶지 않아아아아아!!"

루비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다이아의 가슴 속에서 울화와 함께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미지의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다이아는 일부러 쿵,쿵 발소리를 내며 루비한테 다가간 후 팔을 빠르게 뻗어 옷장을 짚었다. 뒤로도, 앞으로도 도망 칠 수 없는 루비는 파들파들 떨리는 눈으로 다이아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눈물이 눈꼬리에 맺힌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루비의 모습이 다이아에게는 너무나도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 방금 전까지 내 가슴 속에서 요동치던 감정은 다름 아닌 '가학심' 이었구나.

"조.. 조용히 하세요! 진짜로 범해버리기 전에..!"
"이, 이젠 본성이 튀어나온다아!!!!"
"시, 시끄러워요! 확 리본을 입에 물리고 범해버리기 전에 조용히 하라니까요!!"
"뭐, 뭐야 그 시츄에이션은?!!"
"흔한 시츄에이션이니까, 이런거에 일일히 놀라지 마세요."
"흔한거야!?!"
"루비의 이곳 저곳에 제 자국을 남기고 싶어요, 키스하다가 피부를 잘근잘근 꺠물어 나만의 것이라고 표시하고 싶어, 그래서 루비는 그 자국을 가리느라 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그런건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설정이야?! 오리지널 설정이야?! 평소에 나를 보면서 그런 걸 생각했던거야?!"
"다른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루비랑 잔뜩 키스하고 싶어요! 루비도 나를 잔뜩 만져주고, 잔뜩 키스해줬으면 좋겠고! 루비의 손을 잡고 '저희, 오늘부터 1일입니다!' 라고 자랑하고싶어요!!!"
"에, 엑?!"
"..아."

한 순간 욕망에 못이겨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가, 이 이상은 정말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가슴 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간질간질함, 그리고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듯 한 얼굴.

다이아는 더 이상 루비 앞에 서 있을 수 없었다.

"그, 그런거니까.. 알겠지?! 아,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루비!!"

다이아는 저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방에서 도망치듯 나갔다. 주인 잃은 방에선 기운과 얼이 함께 빠져나가 털썩, 주저 앉은 루비와 이 사태의 발단이 된 책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이야기인데,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루쨩 선생님."
"저기, 루비."
"응?"

하나마루는 이 기나긴 이야기를 듣고, 얼이 빠진단 표정으로 루비의 말에 답했고 -

"그래서 지한테 상담을 받고 싶은거유 고백 받았다고 자랑하고 싶은거유?"

루비는 둘 중 하나, 아무것도 못 정한체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Posted by 비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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