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야? 우ㅁ...."
[할 말이 있습니다. 부실로 와주시지 않을래요?]라는 문자를 받은 코토리는 아이돌연구부 부실의 문을 열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이돌연구부 부실에,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저기."
평소와 똑같이 굳게 닫힌 창문, 평소와 똑같이 반짝반짝 빛날정도로 깨끗한 모니터, 평소와 똑같이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놓인 책상들. 여기까진 아무 이상 없었다. 허나 -
"..새, 생일, 축하해요, 코, 코토리."
평소와는 다르게, 정갈하게 놓인 책상 위에 리본으로 팔과 다리가 결박된 채 가련하게 누워있는 코토리의 소꿉친구, 소노다 우미가 평화롭다 못해 따분한 아이돌연구부 부실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눈을 꿈뻑거렸다. 혹시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눈을 꿈뻑여도 보고, 눈을 비벼도 보고, 허벅지 안쪽을 살짝 꼬집어 보기까지 했지만 깨끗하게 놓인 책상 위에 가련하게 누워있는 소꿉친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저기, 우미?"
"ㄴ, ㄴ, ㄴ, 네!"
"다시 한 번 물어봐도 될까? 무슨 일로 불렀어?"
아하하, 어색한 웃음이 곁들여진 질문에 우미는 입을 우물우물 거릴 뿐, 딱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몇 초간 가만히 있다 다시 우물우물 거리길 반복. 그러는 와중에 우미의 얼굴은 급속도로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그게, 그러니까, 그..."
"누가 장난 친거야? 일단 리본부터 풀어줄게."
코토리가 문에서 한 발자국, 우미를 향해 다가가자 마자 우미는 "아, 안돼요! 풀지 마세요!" 라며 복도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질렀다. 손과 발이 묶였는데도 온 몸을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풀지 마세요!' 라며 온 몸으로 말하는 우미를 보며, 코토리는 방금 전과 똑같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우미의 발이 놓인 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우미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 하고 싶었으나 상반신이 놓인 맨 안쪽 자리에 앉으면 우미가 콩벌레처럼 몸을 뚤뚤 말아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맨 끝자리에 자리 잡은 것이었다.
"우미, 다시 한 번 물어봐도 될까? 누구의 장난이야?"
" - 장난 같은게 아니에요!"
"응?"
"저, 저번에 코토리가 말했었잖아요! '생일선물? 우미가 좋으려나?' 라고. 그래서.."
"엑."
기억을 되새길 필요도 없이, 우미한테 끈적하게 달라 붙으면서 '생일선물은 우미가 좋으려나?♡'하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나서 코토리는 다시 한번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아니, 보통 그런건 농담으로 생각하지 않나? 우미가 고지식하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서로 사랑하는 사이잖아요? 그, 그만큼 특별한 걸 생일선물로 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
우미의 마음은 확실히 전해졌으나, 우미의 마음이 확고한 만큼 코토리의 머리는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이 마음은 너무나도 고마웠으나 표현 방법이 너무나도 우미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최소한 우미가 조금 닫힌 공간에서 자신을 불러냈으면 모를까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닌 고등학교였다. 우미의 마음을 낼름 집어먹기엔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저기, 우미."
"ㄴ,네!! 뭐,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오늘 하루만큼은 저는 코토리의 생일선물이니까!!"
"우미의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 하지만 나한텐 너무 큰 선물이라서.. 반송하고싶은데."
"네?"
"반송하고싶다고."
저렇게 부끄러워 하는데 내가 등 한번만 밀어주면 '하긴... 제가 너무 과했죠?' 같은 말을 하면서 그만 두겠지, 코토리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 안됩니다!"
"응?"
"코토리가 저를 보며 답답해 하고 있었단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용기가 안났단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특별히 용기를 내서 이렇게 다가가는 거란 말이에요. 제 마음을 거부하지 말아주세요. 코토리."
"우미의 마음은 너무나도 잘 전해졌지만.. 조금 전에도 말했듯 이렇게 커다란 선물은 받기 힘든걸. 그냥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하면서 분위기 탔지만 사실 많이 무섭잖아?"
"무, 무섭긴요! 하나도 안 무섭 - "
우미는 자기 나름대로 맞받아치려고 했으나 코토리가 검지로 허벅지를 슬쩍 쓸어내리자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꿈틀거렸다.
"무리 할 필요 없어. 이 마음은 나중에 받을게."
"...우으으으."
우미를 위해서라지만 거절은 거절. 코토리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코토리의 고개를 다시 들게 해 준건 우미의 한 마디였다.
"무섭기는 코토리가 더 무서워 하는거 아닌가요? 평소에 그렇게나 저를 답답해 하던건 사실 전부 허세였어요? 속 빈 강정같으니. 다 차려진 밥상 아닙니까."
허세?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코토리의 속은 급속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지금 누구보고 허세를 부린다고 하는거야? 댁을 위해서 이렇게 참고, 참고, 또 참고 있건만. 내 마음을 알아주기는 커녕 속 빈 강정이라고? 이가 부득부득 갈렸지만 코토리는 심호흡을 했다. 그래, 이런 실수라면 한 번 정도는 귀엽게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이런 취급을 받고 그냥 넘어가면 이런 실수를 또 반복 할 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서열 정리를 다시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네."
"네?"
평소와는 다르게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듣고, 우미는 몸을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평소와는 다른 각오로 온 것 아닙니까! 뭐, 뭘 겁먹고 있는 거에요! 소노다!' 따위의 말을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신을 독려 해 봤자 움츠린 몸은 원래대로 펴지지 않았다. 꿀꺽, 우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코토리가 앉았던 의자가 방금 전 코토리의 목소리보다 더욱 낮은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긁었다. 우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끄러워서 차마 쳐다보지 못한 코토리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코토리는 방긋, 미소 지으며 일어 서 있었다. 손에는 어느샌가 가방에서 꺼낸 두꺼운 커터칼을 하나 든 채로.
"이런 퍼포먼스는 말이야, 조금 더 본격적으로 하는 거야. 내가 알려줄게, 우미."
"자, 잠깐만요. 그 커터칼은 왜 - "
몸을 뒤트는 우미의 몸짓에 아랑곳 않고 코토리는 커터칼을 우미의 와이셔츠 안으로 쑤욱, 집어 넣었다. 차가운 철이 우미의 몸을 휘저었고,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서늘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방금 전 보다 더더욱 몸을 비틀었다. 우미는 방금 전과 똑같이 바들바들 떨고 있지만 우미의 몸을 떨게 하는 건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커터칼따위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우미가 두려워 하는 건 칼보다도 날카롭고 차갑에 식은 철보다 차가운 코토리의 웃음소리였다.
"우미, 가만히 있어야 하지 않겠어? 천을 가르는 건 자신 있지만 이렇게 까지 몸을 비틀면 실.수.로 우미의 이쁜 몸에 흉터를 남길지도 모르는데."
"코..코토리.. 미안해요."
"으응? 우미는 전혀 미안해 할 게 없는걸. 오히려 우미의 마음을 몰라 줬던 내가 미안하지."
코토리의 커터칼은 뱀이 기어가듯 느긋하게 우미의 가슴 부근까지 올라왔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순간, 우미는 모든것을 느꼈다. 커터칼의 칼날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날을 내미는 것이 느껴지고, 어느새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이 느껴졌고, 얼어붙은 몸과는 달리 미친듯이 쿵쾅거리는 자신의 심장이 느껴졌고, 그리고 -
"흑..흐윽, 흐으윽.. 미안해요.. 미안해요 코토리.. 제발.. 그만 해 주세요, 흐윽..흐어어엉..."
- 울음을 채 삼키지 못한 채 코토리한테 매달리고 있는 자신이, 느껴졌다.
"어, 어라."
"저..저는 그냥.. 흑.. 흐윽... 끄윽..끅..."
"아니, 나는 이러려던게... 미,미안해! 우미 자, 잠깐만...!!"
어느 순간부터 절대로 남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우미를 본 순간 끊어졌던 이성의 끈이 다시 돌아왔다. 코토리는 황급히 우미의 와이셔츠 안에서 유영하고 있던 커터칼을 빼내고, 우미의 손과 발을 속박하고 있었던 리본을 잘라냈다. 자신을 묶고 있던 리본이 풀리자마자 우미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코토리의 품 안에 안겼다.
"미안해, 미안..."
자신의 품 안에서도 서글프게 울리는 우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코토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우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 할 뿐이었다.
ㅡ
"...죄송합니다."
우미가 입을 연 건 눈물 자국이 선명할 정도로 남은 얼굴을 꼼꼼히 세안하고 난 다음이었다.
"사과를 해야 될 건 나인걸.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맨 살에 커터칼을 대고 칼날을 세웠는데... 내가 너무 과했어, 미안해."
"코토리가 그런 짓을 한건 제가 말실수를 했기 떄문인걸요."
"... 으음, 그래. 오늘 일은 그냥 서로 잘못한걸로. 지금 일어난 일은 이 부실 안에 조용히 묻어두자."
"....."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야단을 맞는 아이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하던 우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코토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우미는 여느 때보다도 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것만은 안됩니다!"
"응?"
'서로의 실수를 묻어두자.'는 말의 어디가 우미를 자극 한 것일까,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며, 코토리는 머리를 바쁘게 굴렸다.
"비록 중간에 겁을 먹어서 그만두긴 했지만, 코토리한테 저를 선물하고 싶다는 그 마음만은 진심이었어요. 비록 처참한 실수로 끝났고, 이런 추한 모습을 보여버렸지만 제 마음을 이런 곳에서 묻긴 싫습니다."
"......"
그 말을 듣고 코토리는 우미의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마주봤다. 우미의 표정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나 참, 평소엔 쑥맥이면서 가끔씩 이렇게 멋있어진단 말이야? 평소에도 이렇게 멋있으면 좋을탠데. 코토리는 간질간질한 마음을 겨우겨우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실수를 묻어두자는 거지 마음까지 묻어두자는 건 아니야."
"그, 그러면...!"
"하지만 방금전에 말했잖아? 반송하겠다고."
"......"
"그 마음은, 나중에 전달 해 줬으면 좋겠어. 분위기에 취해서, 주변 사람들의 말에 혹해서 전하지 말고. 이런 일을 벌인건 아마 에리나 노조미가 부추겨서 그런거겠지?"
"켁."
정곡을 찔렸다는 듯 헛기침을 하는 우미, 코토리는 그런 우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자기 힘으로 전달 할 수 있을 때 즈음, 우미의 마음은 그때 받을게. 알겠지?"
"코토리가...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죠."
"고마워, 내 마음을 알아줘서. 이제 집에 가자. 우미, 해 떨어지겠다."
"알겠어요, 코토리. 집에 가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고, 두 소녀는 '풋' 하고 웃으며 손을 붙잡았다.
"우미의 손, 따듯하네."
"코토리의 손, 부드럽네요."
"오늘 여러 선물을 받았지만, 최고의 선물은 우미가 나에게 준 온기야. 고마워, 우미."
"아, 아닙니다. 저야 말로 고맙고, 미안하죠."
"서로의 실수는 묻어두기로 했잖아? '미안하다'는 말 금지야!"
"아, 알겠어요. 코토리."
코토리는 우미의 손을 꼭 붙잡고 아이돌연구부 부실을 나왔다. 우미가 전달하고자 했던 달달한 마음과 '그냥 못이기는 척 받을걸 그랬나?' 하는 후회의 씁씁함을 남겨 둔 채로.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시마루] 유년기의 끝 - 1 (0) | 2016.11.10 |
---|---|
호노에리] 네가 없는 세상, 네가 있는 세상 (0) | 2016.10.18 |
다이루비] 동생한테 이상한 책을 들켜버리고 말았다.. (0) | 2016.09.09 |
유루유리/히마사쿠] 미래로부터의 전언 (1) | 2016.08.23 |
뜨거운 태양빛이 고마웠던 그 날 (0) | 2016.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