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엔 먼지 하나 없고, 창문 깨끗하고. 창틀에 있는 먼지도 OK.. 좋아, 청소 끝!"
고된 대청소였으나 힘들긴 커녕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오늘이 누구나 기뻐할 성탄절이기 때문일까, 아니. 지금 이렇게 기분이 좋은건 역시 -
[- 띵동]
좋아하는 사람이 오기 떄문이겠지.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차임벨을 누른 사람을 확인했다. 내가 오늘 하루 종일 기다렸던 그녀였다. 그녀가 문 뒤에 있다고 생각하니 기름칠이 덜 된 탓에 '끼기긱' 거리며 열리는 현관문 소리도 지금만큼은 너무 아름답게 들렸다.
"안녕하세요. 코토리."
"안녕! 우미."
허리까지 오는 남색 코트, 목 언저리에 예쁘게 묶인 리본이 인상적인 하얀 블라우스, 체크무늬가 인상적인 빨간 치마. 그리고 치마를 입은게 부끄럽다는 듯 맨 다리를 가린 새까만 스타킹. 평소엔 못 보던 옷이었다. 특별한 날이라고 우미도 나름의 준비를 하고 온 걸까.
"초대해주셔서 고마워요, 그 답례라고 하긴 뭣하지만.. 이걸."
"어?"
뒷짐을 지고 있던 손엔 파란색 케이크 상자가 들려있었다.
"저번에.. 드시고 싶었다고 하셨죠? OO브랜드의 치즈케이크."
"그래서 사와준거야? 고마워!"
우미를 꼭 껴안아주려고 했으나 우미는 "아, 아직 밖이라구요 코토리." 라며 나를 밀쳐냈다.
"아, 미안해. 손님을 밖에 두는건 실례지. 자, 들어와 우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우미는 단화를 벗고 실내를 둘러 보았다.
"정말 깔끔하네요, 저도 코토리를 좀 본 받아야겠어요. 돌아가면 집 안 대 청소를.."
"아하하하.. 고마워, 우미."
하지만 나 같은걸 본받으면 안 돼, 한시간 전 까지만 해도 이 거실. 엄청 더러웠으니까. 라는 말이 튀어나왔으나 그 말은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어라? 호노카는 아직 안온겁니까?"
"아아, 호노카는 오늘 일이 바쁘다고 하더라구."
사실 너 밖에 안불렀어 우미. 라고 말하면 우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갑자기 궁금해졌으나 그 말은 아껴두기로 했다. 혹시라도 호노카를 부른다면 큰일이니까.
"... 그런가요, 아쉽네요. 셋이서 성탄을 맞이하고 싶었는데요."
"하아. 그러게.. 나도 아쉬워."
한숨을 쉬며 쇼파에 앉는 우미를 뒤에 두고 부엌으로 향했다. 술 잔 두개와 어제 사 둔 짭잘한 감자칩 그리고,이 날을 위해 준비해 둔 양주를 챙겨 다시 우미에게 돌아갔다.
"뭐! 아쉬운 건 마시면서 날려버리자구♡"
"에...엑? 코토리, 그.. 그거, 술 아닙니까?"
"친구들 불러 성탄절에 망년회 한다고 했더니 아빠가 챙겨줬어! 엄마는 반대했지만."
사실 아빠 몰래 한 병 숨겨둔 거지만.. 뭐, 한 병 없어진다고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사정을 말하면 아빠는 이해 해 주시겠지?
"저기..그.. 코토리, 저희는 아직 학생.."
"나이 한 두살 적은사람이 술 먹는다고 안죽어! 괜찮아 괜찮아!"
"교칙도 교칙이고..뭣보다 이런건 현행법에 -"
"특별한 날이잖아? 응?"
그렇게 말하며 우미의 손을 꼭 잡은게 효과가 있었는지, 우미는 아무 말 없이 술잔 하나를 챙겼다. 사실 우미가 끝까지 안 마실까 걱정했는데.. 정말로 다행이야.
"이번..한번만 이에요. 알겠죠?"
"물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우미의 잔을 채웠고, 우미는 내 잔을 채워주었다. 짠, 유리잔이 부딫히는 소리가 너무나도 듣기 좋았다. 이제 남은 건 우미가 정신줄을 놓을 떄 까지 술을 부어주는 것 뿐이었다. 오늘이야 말로 너를 가지고 말겠어, 우미.
ㅡ
"후우...."
"..코토리?"
어라라아.. 이상하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 숨쉬기도 힘들고..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쑤시네.. 왜.. 왜 이런거지?
"괜찮아요?"
"당연하지이-! 코토리는 완전히 멀쩡하답니다~"
생각 해 보면 오늘 우미한텐 거짓말만 엄청 했네, 사과해야겠다아.. 아니지, 생각 해 보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우미가 나쁜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어필을 했는데도 한번도 안 받아줬잖아. 그렇다고 아예 싫다고 나를 밀어 낸 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니까 내가 이런 짓까지 하게 됐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아.. 너무 힘들어, 지금 당장이라도 토하고 싶어..
"우미는.. 멀쩡해?"
"저는..조금 얼굴에 열이 올라온 것 같네요."
"그러게에 - 우미, 얼굴이 빨갛게 잘 익었네~ 먹어버리고싶게."
"..네?"
딸기같이 빨간 얼굴이니까 쪼옥, 하고 빨면 딸기맛이 나지 않을까?
"자, 잠깐, 뭐하는거에요 코토리?!"
"히히.. 왜그래에- 우미의 볼, 짭잘한 맛이 나. 감자칩 같았어. 조금 더 맛보게 해 줘."
"하, 하지마요..!"
어라아- 우미, 왜 버둥거리는거야? 우리, 예전엔 알몸까지 본 사이였잖아. 버둥거리지 마. 그렇게 버둥거리면 손목을 잡아 채기도 어려운데..
"제.. 제발 부탁이에요, 코토리.. 자, 잠깐만 떨어져주세요..! 코토리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아니라니까아? 코토리는 지금 완 전 히 멀쩡하다구우.. 애초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린..이런거 많이 하잖아? 응?"
"무.. 물론 그렇긴 하지만, 이런 형태론 아니라구요! 제발.. 놔주세요 코토리..!!"
"싫지롱~ 히히."
블라우스 단추는 왜이렇게 작은거야? 아니, 내 손이 큰건가? 블라우스 단추 풀기 귀찮은데 그냥 확~! 하고 뜯어버릴까? 어라, 그런데 블라우스 단추에 무슨 버튼이라도 달렸나? 왜 갑자기 온 세상이 거꾸로 돌지이..?
"당신. 최악이에요..!"
"..얼..레?"
방금 전 까지 우미는 분명 내 밑에 있었는데.. 언제 빠져나간거람? 방금전에 세상이 거꾸로 돈게 우미가 날 밀쳐내서 그런거였나..? 어라, 그런데.. 방금전에 우미가 뭐라고..
"저, 갈게요."
"어?"
갑자기 온몸에 핏기가 싹 가셨다. 잠깐만, 간다고? 아니, 그전에.. 나, 방금 전에 무슨짓을 한거지?
"자, 잠깐만. 우미."
자리에서 일어선 우미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우미의 눈은 흡사 벌레를 보는 것 같은 눈이었다.
"뭔가요?"
"저, 저기. 미안해. 내, 내가 잠깐 어떻게 됐었나봐. 응?"
"됐어요, 호노카가 없었을 때 부터 알아 차렸어야했어. 원래 이럴려고 부른거였죠? 당신.. 그렇게까진 안봤는데, 정말 최저에요. 실망했습니다."
".....아, 아니. 그건."
아니라고 부정하려고 했지만 우미의 눈이 너무나도 따가워서 차마 거짓말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그건? 뭔가요."
"나는..그냥.. '지금은 안 돼요, 다음에' 라고 말하는 우미 때문에.. 너무 애가 타서.."
"..에."
"그..그래도 그렇잖아! 항상 키스까지 쭈욱 하고, 좋은 분위기까지 냈는데! 계속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그 다음이라는게 오긴 오는거야?! 나, 지난 1년 내내 기다렸단 말이야. 차라리 확실하게 거절을 하면 이렇게 까진 안했을거야. 물론 내가 잘못 한 건 맞아, 정말 잘못 했지만... 나, 우미만 생각하면 몸이 달아 올라서 -"
"그, 그, 그만! 코토리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진.. 알겠어요, 그렇다고 그걸 용서 할 마음은 없지만."
".. 미안해."
아랫 입술을 꾹 깨물고 사과에 사과를 반복했다. 눈물이 나오는걸 꾹 참고 올려다 본 우미의 눈동자는, 방금 전 보다 한결 풀려있었다. 아이를 혼낸 후 엄마가 아이를 부드럽게 보는 눈빛이었다.
"..그러니까, 다음부턴. 정중하게 부탁 해 주세요."
"우미이..."
무릎을 꿇고 나와 눈높이를 맞춰 준 우미의 품에 안겨, 나는 펑펑 울었다. 눈물로 얼룩진, 절대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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